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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보고 · 성명 · 입장문/논평

[논평] 11. 군사법원이 유죄다

오늘, 또 하나의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8년 전인 2010년 9월경, 당시 해군 중위(현 대위)가 직속상관들에게 상습적으로 강간과 강제 추행을 당한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이다. 해군 소령인 첫 번째 가해자는, 여성 성소수자인 피해자에게 “남자 맛”을 보게 해 준다는 치욕스러운 말로 악질적인 추행과 강간을 합리화하였다. 본인이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거부하는 경우 상관으로서의 직위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여 본인의 사비로 임신 중단 수술을 받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당시 피해자가 근무 중이던 함정의 함장이던 해군 중령(현 대령)은 피해자가 임신 중단 수술을 위한 휴가를 받고 복귀하자, 직위를 이용하여 강제적으로 술을 먹이고 위력을 사용하여 강간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불안/우울증으로 시달리다 못해 근무지를 이탈하여 징계를 받았으며, 징계를 받는 도중 근무이탈에 대한 경위를 수사하던 헌병 수사관과 양성평등센터 법무관으로부터 고소 요구를 받아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2017년 7월 14일부터 시작된 재판은, 9개월이 지나 1심에서 첫 번째 가해자인 해군 소령에게 징역 10년형, 두 번째 가해자인 해군 대령에게 징역 8년을 선고를 받았다.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사건 경위를 반복 진술하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으나,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아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항소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유사 사건들로부터 이미 유추할 수 있듯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피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반복하여 트라우마에 더더욱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이 와중에 첫 번째 가해자의 배우자로부터 ‘가정파괴’라는 명목으로 민사소송이 진행되었던 것은 그 뻔뻔함과 극악무도함에 더 이상 할 말을 없게 만든다. 피해자는 시일이 지났어도 해당 사건에 대해 한결같이 일관된 진술을 고수하며 외롭게 싸워왔으며. 현재 겪고 있는 PTSD는 2010년 발생한 피해사실이 원인이 되었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는 것을 넘어 피해자는 항소심 재판장에서 무려 직접 강간을 당하는 날의 모습까지 시연하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11월 8일과, 11월 19일인 오늘 14시 두 가해자 모두에게 2차 항소심 결과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각 징역 10년과 8년의 중형을 선고했던 1심을 뒤엎고 ‘무죄’로 나온 것에 대해 고등법원에서는 [장기간이 지난 기억이라 진술이 과장/왜곡될 수 있으며, 위력에 의한 간음/강제추행은 가능하나 현행법상 ‘강간/강제추행’의 요건이 되는 최 협의의 폭행과 협박이 없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며,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내심으로는 명백한 거부의사가 있었으나 외부적인 명시적 거부로 이어지지 않아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인지하고 일련의 행위를 했다]고 보았다고 한다.

 

우리는 비슷한 사건을 많이 보았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어느 유명 정치인이 수행비서에게 저지른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서도 비슷한 판결문을 보았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약자를 상대로 벌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사건을 보았다. 그리고 여러 건의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결과를 보았다.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며, 고통스러운 피해사실을 수차례 반복하게 말하는 진술과정, 모든 결과를 ‘최 협의로’ 저항하지 않은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사법부까지,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다.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자살하고, 맞아 죽고,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며, 위력에 의한 횡포가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건들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저항했어야’한다고 말한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 없어졌다.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은 성별과 정체성의 소수성을 넘어, 피해자가 약자여서 발생한다. 이 사건 외에 얼마나 더 많은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있을지 모른다. ‘미투’ 운동으로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금일 사법부의 판결은 등을 돌렸다. 사법부는 또다시 위력의 손을 들어 강자의 편에 섰으며,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위력을 가진 자들에게 ‘빌미’를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으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공정하다는 진리와, 사법부의 권위마저 의심케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판결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피해자는 8년 전의 기억을 일관성 있게 진술할 정도로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징역 8년과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도 항소로 무죄로 되돌릴 정도의 위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깊은 고통 속에 빠져있는 피해자와는 달리 이제 가해자들은 구속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것인가. 군사법원은 역사의 기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정녕 ‘유죄’가 무엇인지 모르는가. 고통받는 피해자를 구제하지 못하는 현행법이 유죄이며, 판결을 번복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군사법원이 유죄이며, 조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의심하고 압박해온 모두가 유죄이며, 군인이라면 무조건 군사법원에서 판결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유죄이며, 누가 유죄인지 뻔히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는 사법부가 가장 큰 유죄이다.

 

트랜스해방전선은 본 사건의 피해자를 비롯하여 위력에 의해 고통받고, 맞서 싸우는 모든 피해자와 끝까지 연대할 것이다. 트랜스젠더 또한 그들의 정체성을 이유로 약자와 소수자가 되어 회에서 차별받고, 위력에 의해 고통받으면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당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가장 치열한 곳에서 맞서 싸울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기초적인 진리가 정말 피부로 와 닿을 때까지, 우리는 함께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언제나 교차적으로 위계에서 강자가 되기도 하고, 약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상황에서 강자인 사람은 없기에, 약자와 소수자에게 공감할 수 없는 사회는 결국 다수에게 불평등을 초래하는 사회일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의 연대를 바란다.

 

상고심에서는 2심의 무죄를 뒤엎고 1심보다 더 큰 판결이 확정되길 바란다. 긴 시간 고통받아오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의 힘겨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며, 이어지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올바른 처벌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위력에 의한 폭력을 자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도록, 대법원의 현명한 판결이 필요하다. 모두가 고통받지 않는 사회가 올 때까지, 언제나 트랜스해방전선은 연대할 것이다. 함께 연대하는 우리는 더욱 굳건하다. 외롭게 싸우는 모든 이들의 곁에 언제나 트랜스해방전선이 곁에 있을 것이다.

 

2018년 11월 19일
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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